4MATTERZ

World Flow

015

쇼케이스 이후 (2)

처음엔 음악 얘기였다. Soft Voltage가 너무 깨끗하다는 말, Bleed는 왜 네 번째에 있느냐는 말, Parallel이 뒤늦게 온다는 말, Midnight Space를 끝곡으로 둔 배짱에 관한 말. 그러다 오후 두 시쯤 누가 댓글 하나를 달았다. 야, 원재경 옛날 커버 본 사람 있음?

그 한 줄 뒤로 판이 옆으로 밀렸다. 낮은 조회수, 방 조명, 기타 하나, 이분 데뷔 언제 하나요 같은 오래된 댓글 몇 개. 원래는 조용히 묻혀 있던 것들이 갑자기 현재의 원재경 옆으로 붙었다. 고화질이었으면 오히려 약했을 거다. 그건 홍보물이 아니라 유물이라서 사람들이 더 믿었다.

원재경에서 끝나지 않았다.

커버 얘기로 시끄럽던 바로 그 시간, 오래된 밴드 커뮤니티 게시판 구석에 사진 두 장이 조용히 올라왔다. 제목도 성의가 없었다. 이거 그 기타 아니냐. 반나절 뒤에야 누가 그걸 갤로 물어 왔다. 예전 밴드 사진 한두 장. 작은 무대에서 찍힌 거였다. 포스터는 흐렸고 조명은 누렇고 밴드 이름은 촌스러웠다. 고선우는 지금보다 덜 다듬어진 얼굴로 빨간 기타가 아닌 다른 기타를 들고 있었다. 그 사진은 성공담이 아니라 지나간 팀의 먼지 같은 것이어서 더 오래 남았다.

망밴 기타가 글래시 들어간 거 서사 너무 좋다는 말과 남의 지나간 팀을 서사 재료로 쓰지 말라는 말이 같은 스레드에 살았다. 고선우 얘기인데 고선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발굴이란 원래 그렇다. 본인 없는 자리에서 본인이 제일 많이 언급된다.

드럼 영상은 발굴도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에 그냥 있었다. 조회수 마흔한 회. 아무도 안 보던 영상에 누가 링크를 걸었고, 하루 만에 구만이 됐다. 28초. 너무 옛날이라 화면은 깨지고 조명은 뭉개지고 누가 찍었는지도 애매했다. 그런데 스틱이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쉽게 믿었다. 얼굴이 없으면 소리만 남으니까. 가끔 인터넷은 우연히 공정해진다. 오래 가진 않지만.

D+18 밤, 누가 오래된 백업에서 20초를 올렸다. 자우림 야상곡. 방 조명, 기타 하나, 목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구간만. 올린 사람은 사족을 붙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마음이 외로울 때 이 영상을 많이 들었다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몇 분 뒤에 지웠다. 본인이 제일 잘 알아서 지웠을 것이다. 사랑해서 올렸고, 사랑해서 지웠다. 그 사이 몇 분이 문제였다.

영상은 못 본 사람이 더 많았다. 당연히 그쪽이 더 오래 떠들었다. 원본은 없고 목격담만 남는 순간, 파일은 전설이 된다. 그리고 고증 싸움이 시작됐다.

한겨울에 뜬 태양. 그 문장이 밤새 돌았다. 몇 년 전에 조회수 1.9만짜리 영상 밑에 달렸던 댓글이, 이제는 캡처도 없이 문장만으로 유통됐다. 진짜인지 아무도 확인 못 했고, 진짜 같아서 아무도 안 따졌다.

제동도 바로 걸렸다. 이런 싸움은 늘 너무 빠르다.

싸움은 새벽까지 갔고, 끝나지 않았다. 끝날 수가 없었다. 올린 사람은 좋은 마음이었고, 지운 것도 그 사람이었고, 궁금해하는 것도 죄는 아니었다. 욕할 사람이 없는데 싸움은 계속됐다. 원래 그런 싸움이 제일 오래 간다.

이 시점부터 갈증은 조금 성질이 바뀌었다. 쇼케를 본 사람의 문장으로는 부족했고, 과거 파일로는 찝찝했다. 사람들은 결국 같은 말을 다르게 했다. 지금 걸 보여 달라고. 현재의 방에서, 현재의 다섯 명이, 지금 치는 소리로.

윤다정은 얼굴보다 일로 먼저 돌았다. 누가 크레딧을 타고 들어가 작업물을 묶었다. 전시 티저, 광고 사운드, 짧은 브랜드 영상, 로고가 뜨기 직전의 2초짜리 소리. 하나씩 보면 작은데 모아 들으면 사람이 보였다. 각 작업마다 클라이언트가 원한 걸 정확히 소리로 바꿔 놓은, 필요한 만큼만 밝히고 필요한 만큼만 차갑게 두는 사람. 감탄은 빨랐다. 문제는 그 모음이 다정의 것만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다정의 파도가 건드린 선은 밥벌이였다. 재경의 커버는 개인의 방이었지만, 다정의 작업물은 남의 가게였다. 광고주가 있고 계약이 있고, 크레딧에 이름이 오르지 않기로 한 일도 섞여 있는 영역. 팬심이 그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끌려나오는 건 다정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감탄 자체도 공짜가 아니었다. 클라이언트 파악 잘한다, 정확한 소리 만든다. 칭찬은 그대로 요구가 됐다. 앞으로도 정확해야 한다는 요구.

윤다정 작업물 듣고 오니까 Soft Voltage 이해돼조용히 일하던 사람 일터를 왜 다 뒤집냐가 나란히 걸렸다. 이름은 다정인데 판은 다정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야상곡 파일을 찾는 옵챗 링크는 계속 돌았다. 원재경의 불은 꺼지지 않은 채로 다른 불들이 옮겨붙었다.

준희 것은 한국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멜버른 쪽 계정에서 몇 년째 돌던 학교 공연 영상이 Junie Han 태그를 타고 역수입됐다. 멀리서 찍힌 무대. 얼굴은 거의 안 보였고 이름도 영어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베이스가 묻히지 않았다. 준희는 과거 자료가 떠도 계속 반만 보이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게 오히려 지금의 준희와 맞아떨어져서 사람들이 더 붙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영상이 돌자 사람들이 업로더의 계정을 팠고, 그 계정의 친구 목록을 팠고, 태그를 타고 옛날 사진첩까지 들어갔다.

야상곡 때는 욕할 사람이 없어서 싸웠다면, 이번에는 선이 보여서 싸웠다. 공개 무대 영상과 사적인 사진첩 사이 어딘가에 선이 있다는 건 다들 알았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무도 합의하지 못했다. 합의 못 한 채로 다들 한 발씩 넘었다가 돌아왔다.

싸움들은 서로 다른 방에서 각자 탔다. 갤은 사진으로 싸웠고, 더쿠는 파일로 싸웠고, 트위터는 크레딧과 선으로 싸웠다. 옆방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다 밤늦게 누가 물었다.

발굴에는 순서가 없었다. 순서는 정리글이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진 것들이 목록이 되는 순간, 없던 서사가 생긴다. 사람들은 그 목록을 처음부터 계획된 이야기처럼 읽었다. 이름보다 조각이 먼저 도착했다. 인터넷은 원래 사람을 통째로 부르지 못한다. 손, 악기, 옆얼굴, 화면 밖 소리 같은 걸 먼저 들고 온다. 그리고 그 조각들로 사람을 다시 조립한다. 원재경은 편안한 커버러였다가 백금발 프론트가 됐고, 고선우는 망한 밴드의 기타였다가 빨간 재즈마스터가 됐고, 차규빈은 깨진 화면 속 스틱 소리였다가 팀의 안전판이 됐고, 윤다정은 조용히 일하던 프로였다가 남이 대신 전시한 포트폴리오가 됐고, 한준희는 멀리서도 안 묻히던 베이스였다가 반만 보이는 막내가 됐다. 조립은 대중이 했고, 부품은 본인들의 인생이었다. 회사가 만든 밴드인데, 회사가 만든 사람들은 아니었다. 발굴이 의도치 않게 증명해 준 것은 그거였다.

포매터즈 모니터링방에는 이 말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담당자는 원재경 이름으로 뜬 게시글을 하나 열고 바로 닫았다. 다른 직원은 고선우 사진이 퍼지는 속도를 보고 입술을 눌렀다. 비공개 재업로드 요청 가능 여부 확인이라는 메모가 새 파일 맨 위에 붙었다. 현재 자료 추가 필요라는 문장은 그 아래에 붙었다. 회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도덕으로만 막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도덕은 늦고 클릭은 빠르다. 참 품위 없는 현실이다.

연습실 안쪽에서는 그 말들이 더 늦게 도착했다. 늦게 도착했다고 덜 아픈 건 아니었다.

원재경은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옆에서 윤다정이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지금은 안 보시는 게 나아요.”

“알아요.”

“알면 안 하셔야죠.”

“그게 되면 좋겠어요.”

차규빈이 물병 뚜껑을 닫았다. “폰 줘.”

원재경은 웃었다. 웃었다기보다는 입꼬리를 잠깐 들었다. “언니한테 맡기면 못 돌려받을 것 같은데요.”

“맞아.”

고선우는 예전 밴드 사진을 봤다는 말을 듣고 기타 줄을 두 번 더 세게 감았다. 말은 짧았다.

“그걸 누가 갖고 있어요.”

한준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Old show videos are terrible.”

“너도 떴어?”

“Maybe.”

“그럼 terrible 맞네.”

준희가 웃었다. 그런데 바로 길게 웃지는 않았다. 이런 농담은 잠깐만 유용하다. 오래 웃으면 이상해진다.

포매터즈는 멤버들에게 과거 자료에 직접 반응하지 말라고 했다. 말 자체는 맞았다. 하지만 맞는 말은 대개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 원재경에게 예전 커버는 흑역사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장치 없이 남아 있던 자기였고, 그래서 더 불편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때의 자기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였다. 지금의 원재경은 회사와 밴드와 무대 안에 있는데, 과거 영상 속 사람은 아무 방어막이 없었다. 사람들이 담담해서 좋다고 말하는 바로 그 담담함이, 본인에게는 제일 무방비한 시절의 목소리였다. 고선우에게 예전 밴드 사진은 실패가 아니라 지나온 팀이었고, 그래서 더 가볍게 소비되면 싫었다. 차규빈은 말이 없었다. 대신 다음 공연 얘기가 나올 때 제일 먼저 날짜를 물었다. 윤다정은 작업물 모음 영상의 출처부터 확인했고, 클라이언트 쪽에 미리 알려야 할 작업이 있는지 목록을 만들었고, 링크를 모아 매니저에게 보냈고, 그날은 평소보다 파일 정리를 오래 했다. 준희는 가족 단톡을 잠깐 껐다.

그날 이후 공식 사진이 조금 더 빨리 나왔다. 단독 얼굴컷만 던지지 않았다. 원재경 옆에는 마이크와 기타가 있었고, 고선우 사진에는 손보다 발밑 페달이 더 보였고, 차규빈은 드럼 뒤가 아니라 스틱을 쥔 옆모습으로 나왔다. 윤다정은 장비 화면이 같이 보이는 컷, 한준희는 베이스 스트랩을 고쳐 잡는 컷. 전부 현재의 몸을 가진 사진이었다. 예쁘게 찍힌 사진이었지만 예쁨만의 사진은 아니었다.

물론 반응이 곱게 끝나진 않았다.

회사 여론 보고 사진 푼 거 맞지 근데 사진은 잘 골랐네 얼굴만 안 푼 건 똑똑하다 원재경 단독컷 더 줘라 아니 악기컷도 좋은데요 과거 커버 얘기 나오니까 현재 자료로 덮는 거 너무 보인다 보이면 어때. 낫긴 낫다

이쯤에서 음악 비평도 다시 돌아왔다. 가사가 너무 좁다는 말, 유리와 빛과 문과 거리만 돈다는 말, 반대로 첫 EP라 그 좁은 어휘가 팀의 문패가 됐다는 말. 믹스가 너무 말끔해서 밴드의 손맛이 덜 보인다는 말. 그런데 이제 그 비평들은 과거 발굴만큼 빠르진 않아도 더 오래 남았다. 짧은 자극은 파일을 찾게 만들고, 긴 글은 곡을 다시 틀게 만든다. 둘 다 귀찮고 둘 다 필요하다.

멤버들은 서로를 과하게 달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준희가 농담을 던지면 차규빈이 짧게 받았고, 다정은 필요한 링크만 모아 매니저에게 보냈고, 선우는 사진 얘기가 나오면 방을 나갔다가 기타를 들고 돌아왔고, 원재경은 댓글을 안 본다고 말한 뒤 사실은 조금 봤다. 다들 못났고 그래서 멀쩡했다.

추가 공연 이야기는 그 틈에서 생겼다. 과거를 금지할 수 없으면 현재를 더 크게 만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오래된 파일을 찾는 손을 멈추고 다음 방을 검색하게 해야 했다. 공식은 이 말을 직접 하지 않았다. 대신 무대컷을 올렸고, 포털 프로필을 채웠고, 멤버별 한 줄 코멘트에서 과거를 언급하지 않았다. 말없이 현재를 두껍게 만들었다. 그래 봤자 지옥이 끝나는 건 아니다. 다만 조명 스위치를 회사가 쥐고 있는 지옥과 아닌 지옥은 다르다.

밤이 되자 원재경은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이번엔 자기 이름이 아니라 공연장 이름을 쳤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방의 좌석표가 떴다. 무대가 조금 더 컸고, 객석은 첫공보다 멀었다. 재경은 그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래도 닫지도 않았다. 과거가 너무 가까이 붙은 날에는, 다음 무대의 거리가 오히려 숨 쉴 자리처럼 보였다.